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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은 수많은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3차원 구조로 접히면서 세포 내에서 다양한 기능을 하는 물질로서 오늘날 가장 중요한 신약개발 타깃이 되었다. 유전자 이상이나 돌연변이로 인해 ‘질병 유발 단백질’이 세포 내에 만들어지면 암이나 여러 질환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백질을 무력화시키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돼 왔다.
그런데, 이런 ‘질병 유발 단백질’이 생성된 이후에 약으로 치료를 할 것이 아니라, 아예 만들어지기 못하게 하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siRNA이다. small interfering RNA의 줄임말로서 한국어로는 ‘짧은 간섭RNA’정도가 될 것이다.
세포핵 내에 있는 유전자는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내고자 할 때, 그 단백질의 정보를 담은 메신저RNA(mRNA)를 핵 밖으로 내보내고, 이 mRNA를 리보솜이 번역하여 단백질을 생성한다. 그런데, 어떤 mRNA가 ‘질병 유발 단백질’의 정보를 담고 있다면, 아예 이 mRNA에 결합하는 siRNA를 세포 내로 집어넣어 해당 단백질의 생성을 막을 수 있다. siRNA는 2006년 그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로 두 명의 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현재 수많은 기업들이 siRNA치료제를 만들고 있을 정도로 효과가 입증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siRNA를 세포 안으로 들여보내 작용을 하게 만드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기업 ‘펩티르나 테라퓨틱스(Peptirna Therapeutics)’는 이러한 siRNA의 세포 전달을 위한 ‘펩타이드 전달 플랫폼’ 제조 기업이다.
siRNA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기 힘든 이유는 siRNA가 음전하(-)를 띠기 때문이다. DNA, RNA를 구성하는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는 기본적으로 음전하를 띠는데, 우리 세포막도 음전하를 띠고 있어서 통과하기가 힘들다. 펩티르나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siRNA와 결합하는 펩타이드를 만들었다. 이 펩타이드가 양전하(+)를 띠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중성인 복합체(complex)가 생성되어 세포 내부로 침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지질나노입자(Lipid Nanoparticle, LNP)’를 이용해서 이러한 복합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LNP는 그 구성에 대한 특허가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에 귀속돼 있어 해당 LNP를 쓰려면 많은 사용료를 내야 한다. COVID-19 백신으로 잘 알려진 모더나(Moderna)도 mRNA백신을 제작하면서 사용한 LNP 기술로 인해 ‘아버터스 바이오파마(Arbutus Biopharma)’로부터 2021년 대규모 특허 소송을 당해 패소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LNP는 그 구성이 매우 불안정하여 초저온 콜드체인이 있어야만 운송 보관이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재 글로벌 siRNA 치료제 개발기업들 대부분이 갈낙(GalNAC)이라는 물질을 siRNA에 결합시켜 사용하는데, 이 물질은 ‘간’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수용체에 강력히 결합되기 때문에 실제로 간 이외의 다른 세포로 치료제를 보내기가 힘들다. 그 결과, 현재 개발된 대부분의 siRNA 치료제들은 간질환 또는 간과 관련된 다른 장기들의 질환에 특화돼 있다.
또 하나, siRNA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세포 내로 투입됐을 때, siRNA를 둘러싸게 되는 엔도좀(endosome)을 탈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펩티르나가 개발한 펩타이드는 엔도좀을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실제로 세포 내에서 작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펩티르나 김병일 대표는 “펩티르나의 플랫폼 ‘펩티셀플렉스(Pepticellplex)’는 LNP 사용의 복잡성 문제, 간 이외 조직에도 siRNA를 전달하는 문제, 엔도좀 탈출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한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김병일 대표는 고려대에서 분자생물학 분야 석사를 마치고, 펩타이드 소재 개발연구에 13년 이상 매진해왔다. 그러다가 창업의 꿈을 품고, 그간 본인이 개발해온 펩타이드 기술을 바탕으로 siRNA 약물전달 플랫폼을 만들며 창업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siRNA 치료제의 선두기업은 미국의 앨나일럼(Alnylam)인데, 이 회사의 주력 분야도 모두 간질환 분야이다. 그런데, 펩티르나의 약물 전달체 기술이 채택된다면 앨나일럼을 비롯해 siRNA치료제를 개발하는 많은 기업들이 펩티르나의 고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작은 바이오 스타트업이 이루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김병일 대표는 장기적인 플랜과 더불어 현실적인 초기 사업모델로 화장품 원료물질 전달체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요즘 각광받고 있는 화장품 원료 물질 중에 PDRN, NAD, 히알루론산, 콜라겐, ATP 등 다양한 물질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음전하를 띠고 있어, 펩티셀플렉스에 결합이 가능하며 부피가 20나노미터(nm)수준으로 작아져서 피부로 원료물질을 들여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실험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국내 굴지의 화장품 제조기업으로부터 제조 요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초기 모델이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도 큰 사건이지만, 펩티르나가 중장기적으로 성장하는데 강력한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