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27절의 ‘돌아온 자’는 포로지에서 본국으로 돌아온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개하여 돌아온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강하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교도는 “삼오라기”, 부싯깃과 같음.[1]
그들의 행동, 생각은 대화제를 일으키는 “불티”가 됨.
그럼에도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런 삶을 고의적으로 선택함.
=> 종말에 함께 할 것.
종말이 예비된, 자멸의 길을 왜 백성들은 따랐는가?
그것이 더 눈에 보이고, 효과가 있어 보였기 때문.
가나안 종교 제의와 달리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았음.
Why? 형상이 없었기 때문 (제2계명).
오늘날에도 같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불의한 자,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들이
더 부유하고, 질이 좋은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의와 공의
미쉬파트와 쩨다카
사법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하나님의 눈에는 ‘악’일 뿐이다.
이 악에서 비롯된 악행으로 인해
악인들이 ‘자멸’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여 멸망되기도 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눈에 보이는, 좋아 보이는, 더 옳아 보이더라도
과연 하나님의 미쉬파트와 쩨다카가 살아있는지
우리는 아니 ‘나’는 무언가를 할 때 꼭 점검해야 한다.
만약 악인들의 자취를 따라가고 있었다면,
재빠르게 돌이켜 하나님께 회개하자.
왜냐하면 자명한 사실 하나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의 끝은 ‘멸망’.
하나님이 갚으신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How?
1) 매일 아침 하나님을 생각하기 (기도, 묵상)
2) 정의와 공의를 따르지 않고 이득을 취한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없나 생각해보기
3) 있다면, 회개하기
4) 우리는 이 생이 끝이 아닌, 그 이후의 생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5) 참된 창조주, 야웨;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늘 도와주시는 보혜사, 성령님 찬양하기.
[1] Watts, Isaiah 1-33 (2004)
[참고문헌]
안소근. 『이사야서 1-39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서울: 바오로딸, 2015).
카이저, O. 『이사야 (1)』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Childs, Brevard S. Isaiah. The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
“משפט”.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DOT. Vol.9. (Michigan: Wm. B. Eerdmans, 1998):
“צדק”. G. J. Botterweck, H. Ringgen, H.-J. Fabry. in TDOT. Vol.12. (Michigan: Wm. B. Eerdmans, 2012):
Watts, John D.W. Isaiah 1-33. Word Biblical Commentary 24; Revised ed. Grand Rapids:Zondervan,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