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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눈 앞의 문제만 해결되었다고

좋아하는 예루살렘 주민의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애네 진짜 멍청하다’라는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

나를 화나게 한다. 

 

그럼 더러는 질문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이니즐거워 하면 안되나요?” 

본문은 이런 상황에서 즐거워하지 마라고 한 것이 아님.

남유다는 지속적으로 그들의 삶에 포함되어있는

‘우상숭배’, ‘이방 제의 관습’을 지적 받았다. 

또한 13장부터 시작되는 이방신탁을

단순히 우리말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즉,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방민족이 심판 받는 원인을

들은 것이 아닌,

그 결과만을 본 것이다.

이방 심판 => 그들이 야웨께 예배하러 ‘시온’에 옴.

 

그들은 나단 신탁만을 보았다. 

그 나단 신탁의 근거인 다윗의 ‘신실함’은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들의 생활습관, 패턴, 사상, 생각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말로만” “하나님의 백성”, “선택 받은 자”라는

우월감만 있었을 뿐이다.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을 봐야” 한다(11절).

 

하나님을 본다면, 우리는 내일을 희망할 수 있다. 

그저 오늘로 끝이라는 생각이 아닌,

더 열심을 가지고 내일에 다가올 야웨의 구원의 날.

나를 향한 야웨의 계획이 실현되는 날.

나의 헌신이 빛을 발하는 ‘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만’을 보고, ‘내 상황만’을 본다면,

예루살렘 주민 같이

진정한 문제 해결이 아닌

액면가의 눈에 보이는 상황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러면서 하나님한테 감사도 하지 않고,

하더라도 행동과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 ‘말 뿐이며’

 

이런 상황에서 ‘복’은 오히려 ‘죽음’이 된다. 

하나님은 대접 받고자 하는 데로 우리를 대접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리셨다면,

그에 걸맞는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이 되고.

사실상 복으로 온 것의 결과는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상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How? 

 1) 내 인생에 있어서 1순위가, 아니 0순위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 주일예배’만’ 잘 드리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높여야 함.

2) 내가 여태까지 잘 지내온 것은 하나님의 ‘역사 개입’이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하기. 

3) 교만하지 않기.

 - 교만으로 인해 모든 이방 나라가 망했음(사 13-23장) 

4) 버스 탈 때, 차 탈 때, 걸을 때, 빨간불 걸렸을 때,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참고문헌]

안소근. 『이사야서 1-39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서울: 바오로딸, 2015).

카이저, 오토. 『이사야 (Ⅱ)』 한국신학연구소학술부 역.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

The Ancient near East: An Anthology of Texts and Pictures. Edited by J. B. Pritchard. Princeton and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Wildberger, Hans. Isaiah 13-27. Translated by Thomas H. Trapp. A Continental Commentary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