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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삶에 적용

주석을 하면서 읽었던 한 학자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피조물 – 창조주의 혼란은

단순히 이사야 시대에 국한시킬 수 없다.

사실 오늘날까지의 세계 역사, 현재 진행 중인 역사 속에서도

보다 명확히 확인 가능하다.

폭력과 교활함이 ‘도덕성’보다 더 큰 중요성을 “차지했을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조차 폭력의 목적을 위해 “이용 되었을 때”

거시적 관점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시/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일의 reflection ‘상’ 이다.

따라서 세상이 가는 길에 ‘분노’하거나,

진정 뭐가 문제인지 모르면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 싸운다는

‘맹목적인’ 결정(blind decision)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과, ‘나의 하나님’과 씨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승리하고 내가 지는 방식으로 일이 이뤄져야 한다.

이때, 세상은 최소 한가지 면에서는 더 평화로워 질 것.

샬롬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의 여부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세상을 세상으로

내버려 둘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여러 질문을 내게 던진다.

나는 무용한 것을 신뢰했는가(3절)?

하나님의 신실하심, 구원을 경험했음에도 회개를 하지 않지 않았는가(6-7절)?

회개를 했더라도 반복하여 그 죄를 범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임재가 나에게 ‘구원’인가 ‘불’의 심판인가(9절)?

이러한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창구는

모두가 아시겠지만 “기도”뿐.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하나님 앞에 이해 안되는 환경, 문제, 정세를

가져가고 하나님과 씨름하여,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이기는 결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음.

How?

1)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우선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기

1)-1.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 선언하기.

2) 이해가 안되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황, 환경을

하나님께 들고가서 담판 짓기.

[참고문헌]

안소근. 『이사야서 1-39장』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서울: 바오로딸, 2015).

Kaiser, Otto. Isaiah 13-39. Translated by R.A. Wilson. The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4.

Sweeney, Marvin A. Isaiah 1-39 with an Introduction to Prophetic Literature. 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16; Edited by Rolf P. Knierim, Gene M. Tucker. Grand Rapids, MI: Willian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6.

Watts, John D.W. Isaiah 1-33. Word Biblical Commentary 24; Revise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04.

Wildberger, Hans. Isaiah 28-39. Translated by Thomas H. Trapp. A Continental Commentary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