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

Description

여성의 몸은 400번 이상의 생리를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여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 개념은 바로 ‘번식’이다.(14쪽) 이 ‘번식’이라는 개념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은 모두 번식, 즉 생식, 임신, 출산과 양육 등 번식과 관련해서 다뤄진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중에서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생리이다.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불편함을 호소하는 생리를 인간은 왜 진화시킨 것일까? 여타 다른 포유류에서 흔치 않은 생리를 설명하는 진화론적 가설은 여러 가지지만 아직 명쾌한 설명은 없다.(96~98쪽) 문제는 현대 여성이 일생 동안 겪는 생리 횟수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대부분의 가임기간 동안 사실상 임신 혹은 수유 상태였으며, 평생 100~150번 정도 생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대 여성은 한두 번의 임신과 몇 개월에 불과한 수유 기간으로 인해 과거 선조들보다는 서너 배가량인 350~400번의 생리를 한다. 이런 엄청난 횟수의 생리로 인한 주기적 호르몬 변화와 잦은 에스트로겐의 홍수는 여성의 건강에 아주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유방암과 자궁암, 난소암 발병률이 높아지며, 생리 전 증후군이나 우울증 등 정신 건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결함인가 방어인가?
생리와 생리 전 증후군, 초기 유산, 임신성 당뇨, 자간증(임신중독), 입덧, 산후 우울증, 폐경 증상 등 여성의 ‘증상’은 의학적으로 질병에 불과할까? 호르몬 대체요법 같은 것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초기 유산은 당사자들에게도 안타깝고, 의학적으로 치유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진화론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 않다. 사실 초기 유산은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진화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식의 숫자보다 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향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아기를 계속 임신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진화적인 측면에서는 건강하지 않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해서 수유하고 키우는 것보다는 그 에너지를 보다 건강하고 향후에 손주를 가질 가능성이 높은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133쪽) 따라서 상당수의 초기 유산에 대해 ‘여성은 슬퍼할 필요도 없고, 치료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임신 초기의 유산은 결함이 아니라 진화론적인 ‘방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현대에 보편화되다시피 한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중년 여성에게 나타나는 폐경은 고쳐야 할 증상일까? 생리 전 증후군을 억제하기 위해 피임약을 먹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 지은이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정상’은 없다!
여성의 몸의 진화를 살펴보면서 지은이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상’이라는 개념이다. 정상 생리 주기, 정상 생리 기간, 정상 신생아 체중, 아이의 정상 발달 곡선 등.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 자주 말하는 ‘정상’은 선진국의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일종의 가상의 개념이라는 것. 진화 의학자들은 인간의 신체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아주 다양하게 적응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은 건강 부국인 미국과 건강 빈국인 볼리비아 여성에게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볼리비아 여성의 프로게스테론 수치는 미국 여성의 프로게스테론 수치에 비하면 거의 불임클리닉에 가야 할 정도이지만, 임신이나 출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기서 정상 수치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유 수유는 어떤가? 지난 수십 년간 세계보건기구와 국제 건강 클리닉에서 사용한 신생아 성장 곡선의 예를 보면 ‘정상 발달’의 맹점을 알 수 있다. 이 성장 곡선은 “미국의 한 지역에서 수집된 건강한 유럽계 미국인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원자료는 펠스 추적 연구(Fels Longitudinal Study)라고 알려진, 1929년부터 1975년까지의 체질측정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데이터에 포함된 신생아의 대부분은 모유 수유를 받지 않았거나 짧은 기간만 수유를 받았다. 이 기준표를 모유 수유아에게 적용하면, 8~12개월 무렵에 대부분 적정 이하의 성장을 보인다고 판정받는다.”(232쪽)

#웬다트레바탄 #여성의진화 #에이도스 #박한선 #인류학 #진화의학 #과학책읽어주는남자 #과읽남 #과학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