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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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물리학의 최대 수수께끼
시간은 흐르는가, 흐르지 않는가
“만약 누가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설명하려고 한다면 나는 모른다”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시간은 인류의 오랜 수수께끼다. 시간,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정의하기란 어렵다. ‘지금’을 가리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지금’이 아닌 과거가 되어버린다. 끊임없이 흐르고 매 순간 새로 생겨나는 이 덧없는 시간 때문에 괴로워하기는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시간을 물리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아인슈타인은 “‘지금’의 대한 경험은 과거와 미래와는 다른, 인간에게 매우 특별한 뭔가를 의미”하지만, “이 중요한 차이가 물리학 안에서는 나타나지도 않고, 나타날 수도 없다”는 데 낙담했다.
‘지금’의 의미와 짝을 이루는 시간의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시간의 흐름’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흘러가는데, 이는 ‘지금’의 의미가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로 보아 명백하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이란 곧 ‘지금’의 움직임인가, 아니면 시간이 ‘지금’을 거쳐서 흘러가는 것인가, 혹은 새로운 시간이 매 순간 생겨나는 것이 ‘지금’인가? 시간이 멈추거나 혹은 느려지거나 빨라지거나 혹은 불규칙하게 흐른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가? 왜 시간은 뒤가 아니라 앞으로만 흐르는가?
현대 실험물리학자가 말하는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이러한 현기증 나는 질문들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 성직자, 현대 물리학자들을 괴롭혔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지금’의 의미와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그것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 ‘시공간 다이어그램’에 만족했으며, 물리학은 ‘시간과 관계없이’ ‘시간을 초월한’ 실재의 법칙을 다루어야 하며, 시간의 흐름이란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 환영에 불과하다고 외면했다.
하지만 저명한 실험물리학자인 리처드 뮬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지금’은 누구나 지각할 수 있는 실재하는 현상이며, 물리학은 측정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의 실재성을 부정해서는 안 되고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20세기 물리학이 이루어낸 위대한 진보들에 힘입어 비로소 ‘지금’을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한다.
“‘지금’을 이해하는 데에는 상대성이론, 엔트로피, 양자물리학, 반물질, 시간여행, 얽힘, 빅뱅, 암흑에너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비로소 지금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지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리학 지식을 손에 넣었다.”
뮬러는 상대성이론에서 열역학, 빅뱅 이론에서 양자물리학까지 현대 물리학의 주요 성취들을 되짚으며 ‘지금’이라는 시간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간다. 그 과정에서 엔트로피와 물리주의 같은 잘못 맞춰진 퍼즐조각들을 빼낸 후, 마침내 ‘4차원 빅뱅’이라는 검증 가능한 독자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뮬러는 실험을 통해 시간의 처음과 끝을 연구한 바 있다. 그는 빅뱅 후 50만 년경 아기 우주가 방출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관측함으로써 ‘시간의 처음’을 측정했고(이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한 조지 스무트는 20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초신성 관측을 통해 우주의 가속 팽창을 발견함으로써 ‘시간의 끝’(빅 크런치)은 없을 것임을 밝혔다(이 연구를 이어받은 제자 솔 펄머터는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이론가가 아닌 실험물리학자가 시간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한 최초의 책으로서, 현대 물리학이 시간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뮬러는 물리학이 우리의 직관에 어긋나는 시간의 이상한 성질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음에도, 여전히 시간이 무엇이며 실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지금’을 인간의 자유의지가 행사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으로 규정함으로써 물리학뿐 아니라 철학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 주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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