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

Description

생명의 정의를 다시 세우다
분자생물학 혁명과 합성생명체의 한계

에르빈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염색체에 “한 개체의 일생 동안의 발달 패턴을 결정하는 모종의 암호문”이 있으며, 비주기적 결정aperiodic crystal 안의 원자들에 유전을 위한 충분한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라 했다. 벤터는 1990년 연구팀과 함께 살아 있는 한 세포의 유전체를 최초로 해독했고, 그런 다음 인간의 유전 암호문을 해독하였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그는 슈뢰딩거가 말한 ‘인간 생명의 암호를 담고 있는’ 비주기적 결정의 놀라운 내용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벤터는 슈뢰딩거가 비주기적 결정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기술한 유전자의 실체를 규명하여, 처음으로 생명체의 유전체에 들어 있는 정보를 밝혀냈다. 또한 세균의 유전체를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이것이 실제 세균 유전체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것도 밝혀냈다. 벤터가 창조한 합성유전체에 담겨 있는 생명 정보는 오직 기존에 살아 있는 생명체의 활동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즉 이미 존재하는 세균의 유전체에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을 화학적으로 복사한 것에 불과할 뿐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생명을 전송하다
생물학적 순간이동의 가능성과 전망

벤터는 자신이 합성 생물을 창조함으로써 생물학을 정보학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으며,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송할 수 있듯이 생명 역시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화성에 DNA 기반의 생명체가 있다면 화성 탐사선이 이 생명체의 유전체서열을 획득해 그 정보를 지구에 전송함으로써 화성의 생명체로 지구에서 그 유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공상과학 소설의 이야기 같지만, 벤터는 이러한 연구가 궁극적으로 맞춤형 의료 개발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독감이 유행할 때 백신을 분배하는 일에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면 현재 몇 개월이 걸리는 백신 생산과 전달 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 실제로 벤터의 연구소와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합성생물학과 세포 기반 제조를 이용해 5일 만에 새로운 백신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벤터의 기술을 이용하면 세균을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파지 요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도 단축할 수 있다. 개별 질병과 개별 환자에게 맞는 파지를 신속하게 설계하고 증식시킬 수 있다. 벤터와 그의 연구팀은 현재 디지털 생명 전송 장치를 만드는 시도를 보완하기 위해 수신 장치를 만들고 있다. 즉 전송된 DNA를 정보를 조합해 재생산하는 장치이다. 현재 이 장치는 ‘디지털 생물학 컨버터’, ‘생물학적 순간이동기’ 등의 가칭으로 불린다. 이른바 ‘생명의 3D 프린터’라고 할 수 있는 이 장치가 완성된다면, 궁극적인 맞춤 의료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적·인지적 기능을 향상하고 식량, 에너지,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레이그벤터 #김명주옮김 #인공생명의탄생 #합성생물학 #인공생명 #바다출판사 #과읽남